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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방식은 바뀌어도 전문성은 남는다

thinking | 2026년 8월 11일


내가 배워 온 제품 개발 방식에는 비교적 분명한 역할과 순서가 있었다. PM이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디자이너가 화면과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면, 개발자가 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했다. 각 직군이 자신의 전문 영역을 맡아 하나의 사이클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AI의 발전은 이 익숙한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다. 이제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화면을 만들고, 코드를 작성하는 데까지 참여할 수 있다. 역할 사이를 오가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하면서 이 전환기를 직접 보았다. 변화는 예상보다 빠르게, 이미 일하는 방식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달라진 팀의 모습

이전 회사에서 진행한 해커톤을 계기로 새로운 AI 팀이 만들어졌다.

기존 조직은 디자인, 프론트엔드, 백엔드, 데이터처럼 직군별로 나뉘어 있었다. 반면 새 팀은 디자이너 한 명, 프론트엔드 개발자 한 명, 데이터 챕터 두 명으로 구성된 작은 조직이었다.

이 팀의 협업 방식은 이전과 달랐다. 디자이너가 UI를 직접 구현해 PR을 올리면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코드를 검토하고 상태 관리처럼 추가적인 전문성이 필요한 로직을 담당했다. 데이터, 인프라, 서버 영역은 데이터 챕터 구성원들이 맡았다.

업무의 경계도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네 명 모두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우선순위를 논의하고, 직접 결과물을 만들었다. 각자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PM의 역할까지 함께 맡은 셈이다.

AI가 단순히 새로운 도구를 하나 추가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디어가 제품이 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역할 자체를 바꾸고 있었다.

처음 느꼈던 회의감

몇 번의 클릭만으로 웹사이트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며 회사에서는 이런 말도 종종 나왔다.

이렇게 하면 바로 나오는데, 개발자는 무엇을 하나요?

처음에는 이 질문 앞에서 회의감을 느꼈다.

그동안 내가 배워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구현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면 개발자의 전문성도 함께 작아지는 걸까. 지금까지 쌓은 역량이 더는 인정받지 못한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을 찾지 못한 채 변화만 바라보던 시기에는 점점 시니컬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은 코드를 직접 작성하는지가 아니었다.

전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AI 덕분에 한 사람이 다룰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 이전에는 다른 직군의 도움을 기다려야 했던 일도 이제는 직접 시도해 볼 수 있다.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직군 간 협업의 방식도 유연해졌다.

그렇다고 각자의 도메인 전문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맥락을 이해하고 더 나은 UI와 UX를 판단한다. PM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의하고 제품이 나아갈 방향을 설계한다. 개발자는 눈앞의 기능뿐 아니라 시스템의 안전성, 확장성, 유지보수성, 효율성까지 고려한다.

AI는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을 단축할 수 있지만,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결정하지는 못한다. 만들어진 결과가 충분히 좋은지 판단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일 역시 사람의 몫이다. 이 판단의 기반이 바로 각자가 쌓아 온 전문성이다.

다만 전문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존 방식에 머물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성을 지키는 것과 익숙한 업무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다르다. 도구가 바뀌면 전문성을 사용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것

세상은 계속 바뀌어 왔고 앞으로도 바뀔 것이다. 지금의 변화가 유난히 빠르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 쉬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더 중요한 문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발자가 반복적인 구현에서 벗어나 구조와 품질, 사용자에게 전달할 가치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변화 앞에서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쌓은 전문성을 부정하는 일도, 과거의 방식만 붙잡는 일도 아니다.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구를 익히고, 더 넓어진 역할 안에서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일하는 방식은 바뀌고 있다. 전문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쓰이기 시작했다.